김영하의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의 제목이 품고 있는 극단적인 메시지처럼, 이 작품은 생명과 존엄, 그리고 예술의 경계에 대한 가장 차갑고도 아름다운 탐구입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도시의 익명성 속에 숨어 타인의 죽음을 돕는 한 남자를 통해 파괴라는 행위가 가질 수 있는 완벽함의 미학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이야기는 냉정한 관찰자인 나 혹은 엠이라 불리는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그는 일종의 자살 조력자로, 스스로 삶을 끝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배경을 연출하는 일종의 예술가입니다. 그의 고객들은 공통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며,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형태의 자아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엠은 그들의 의뢰를 예술 작품처럼 다루며, 죽음을 단순한 사건이 아닌 하나의 고도로 계산된 이미지로 만듭니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파괴와 아름다움의 역설적인 결합이 놓여 있습니다. 엠이 만나는 주요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지우고 싶어 합니다. 쌍둥이 자매인 세연과 주디스는 구별 불가능한 존재로서의 삶을 파괴하려 하며, 육체적 고통을 감당하는 케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소멸시키고자 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벗어나, 적어도 자신의 소멸만큼은 완벽하게 통제된 형태로 완성하고 싶어 합니다. 엠은 바로 이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매개자입니다. 그는 이들의 삶을 구원하려 들지 않으며,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그들이 원하는 가장 아름다운 파괴의 순간을 제공할 뿐입니다.

소설의 배경인 서울은 이 모든 고독한 행위가 펼쳐지는 차가운 무대입니다. 서울은 엠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끝없이 확장되지만 인간의 온기는 찾아볼 수 없는 익명성의 공간입니다. 고가도로 아래의 어두운 풍경, 방음이 안 되는 낡은 오피스텔, 삭막한 호텔 방 등은 인물들이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의 파괴를 준비하는 밀실이 됩니다. 도시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익명성은 역설적으로 개인의 고독을 극대화하며, 자신의 소멸마저 타인의 시선을 빌려야 하는 현대인의 소외감을 강조합니다. 엠이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 고객들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는, 소멸 직전의 삶을 하나의 완벽한 이미지로 박제하려는 도시 문명의 병적인 심미주의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에서 죽음은 종교적 단죄나 의학적 실패가 아닌, 예술적 형식으로 다루어집니다. 엠은 스스로를 구원자가 아닌 안내자로 규정하며, 그의 조력 행위는 결국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종의 퍼포먼스 아트입니다. 그는 고객들에게 스스로의 파괴를 요청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며, 그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이는 작가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전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정권의 마지막 행사가 곧 자기 파괴라면, 그것을 금지할 윤리적 근거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엠의 정체성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미스터리이자,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감정 없는 렌즈처럼 사건을 관찰하지만, 그의 행위는 그 자체로 강렬한 윤리적 딜레마를 내포합니다. 그는 생명을 파괴하지만, 그 파괴를 통해 고객들은 그들이 원했던 가장 완벽한 자아의 이미지를 남깁니다. 엠은 아마도 현대 사회에서 결여된 타인의 고독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상징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는 판단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으며, 오직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 완성을 돕습니다. 그의 역할은 차라리 타인의 소멸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려는, 지극히 고독한 현대 예술가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단지 충격적인 소재로 승부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밀도 높은 문장과 차가운 지성으로 채워져 있으며, 독자에게도 그 냉정함을 요구합니다. 소설은 삶의 의미를 묻는 대신, 소멸의 의미를 묻습니다. 우리가 가진 파괴의 자유가 결국 존재의 자유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질문은 소설이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물질적 풍요 속에서 심리적 단절을 경험하는 우리 시대의 고독을 가장 첨예하게 그려낸 문학적 성취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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