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서림
- 출판
- 문학동네
- 출판일
- 2000.11.15
별점 : ☆
2023년에 살아남기 어려운 책
아무래도 20년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낡다. 표현이 낡은 건 둘째치고, 요즘에 말해서는 매장당할 법한 표현들이 난무하다. 성적대상화가 심하고, 여성혐오적이며, 가부장적이다. 시편 중 일부는 십 수 년 전에 만난 여성을 기억하며 그 기억 속에서 육체를 떠올리는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런 시편들이 어떻게 시집의 제목인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와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본문 후에는 해설이 달려 있는데, 해설의 제목은 또 "충만한 말과 충만한 텅 빔의 미학"이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것은 "충만한 말"이라기보다는 "단어만 많은 것"에 불과하며 그 단어들이 어떠한 이미지나 의미를 이루지 못하고 다분히 "소모적"이며 그저 시인에 의해 "소모되기 위해" 쓰여질 뿐이다. 책을 읽고 나면 남는 구절이 있어야 당연한 것인데 이 시집을 읽고 나서는 남는 표현이 아무것도 없다.

박수근과 박수근과 박수근
이 시집의 여러 시편들에서 제목으로 쓰였고 평소에 무심히 지나쳐가던 사람들을 담아내는데 소진한 이름이다. 내가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본 것은 남성 시인이 쓴 작품에서 여성의 존재가 어머니 같이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에 녹아 있다는 점이다. 60년대부터 2000년이 되기 전에 쓰여진 한국문학 작품들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상당히 많은 작품에서 남성 화자 또는 남성 주인공이 성찰하거나 성장하는 재료로 여성은 언제나 소모되어 왔다. 나는 이 시집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왜 남성 화자가 성장하기 위해 여성의 존재를 지워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나요, 왜 여성의 몸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희롱하면서 성장하는 방식을 선택했나요, 왜 당신이 쓴 시의 시적화자는 본인이 나쁜을 저질러놓고 여성을 돈주고 산 본인의 모습에 연민과 부끄러움을 느낀 건가요. 불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법제화가 되기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 정당하게 비판하고 싶어 참아본다.
박수근 2
허름한 사실주의적 풍경이 좋아서
단골로 찾고 있는 합천집,
오 년째 내 목숨 이어주고 있는 밥집 아줌마.
내 몸 속에 감춰두고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했다.
아줌마도 언제나처럼, 몸 속에서 기르고 있는
말의 숲 가장자리까지 걸어나왔다가는
조심스럽게 얼른 숨어버리곤 한다.
피가 돌고 있는, 물컹물컹한 말의 숲이란
딱딱한 언어의 껍질 속에서 숨쉬고 있는 것,
이곳에서 어른들 사이 오가는 언어란
정권(政權) 따위나 성토하기 위해 있는 것,
그럴 때만 서로의 언어는
쨍그랑 소리를 내며 날카롭게 화합한다.
오늘은 드디어, 다섯 살배기 내 딸 재롱 덕분에
껍질까지 벗고 나와서
새벽 안개 피어오르는 숲속을
서로 조금씩 기웃거릴 수 있었던 것.
메타시에 대해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는 여러 편의 메타시가 수록되어 있다. 메타시라는 것이 단어가 어려워보일 수는 있으나, 시를 쓰는 행위 또는 시에 관해 쓰여진 시라고 보면 된다.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메타시이고, 박태원 작가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지식인이라는 데서 오는 고뇌를 그리고, 도시 풍경을 재현하고 있지만 구조상으로는 메타소설의 형식을 지닌다. 시적 화자가 시인이거나 시의 내용이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면 메타시, 소설이 그런 식이라면 메타소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메타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시를 쓰는 행위는 무엇인지 묘사가 잘 되어 있어야 하고 본인의 성찰이 들어가고 시에 대해 본인의 새로운 정의가 내려져야 하는데, 이 시집은 그렇지 않다. 그냥 시를 쓰는 자신에게 취해 있다. 서정시를 쓰고 싶었다면, 그런 사전정보 없이 읽는 것만으로도 이게 서정시라는 걸 독자가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 시집은 제목에서부터 '나 지금부터 서정시 쓸 건데 한 번 감동 받아봐'하는 식으로 알려주고 시작한다. 작가로서 비겁한 행위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서정시는 감정적인 시가 아니다. 감정적이면 오히려 서정시가 될 수 없다. 본인의 느낌을 최대한 억제하고 억누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튀어오르는 단어들이 서정시가 될 수 있다. 반면에 서림 시인의 시들은 너무 쉽게 쓰여졌다. 쉽게 쓰여진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쉽게 소모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일상을 그려내든 관계성을 그려내든 보편적인 상황과는 다소 거리를 두어야 이 사람만의 생각이 담겨진 시(詩)구나 할 텐데, 거리를 걷다가 한 번 고개 돌리면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을 그렸으니 목적지까지 도착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질 수밖에.

서정의 고통 1
피가 돌고 눈물이 도는 진짜 시
한 편 써내기
이렇게도 어려운 이유 ─
바로 내 간 같은 공기 같은 아내
사랑하기 어려움이다.
창자라도 콩팥이라도 끄집어내어 줄 듯하다가도
금방 혓바닥으로 활활 갈라지는 화염 내어뿜고 마는
마음 깊숙이서 식칼로
빈 도마 정신없이 두들기고 마는
별볼일 없는 내가, 또한
별볼일 없는 내 아내 한번
안아주기 어려움이다.
아닌 밤중에 뒤통수 맞듯 정리해고 당한 아내를,
중풍 든 친정엄마, 세 살짜리 딸아이에 치여
정신마저 해고되어버린 아내를 몰라주는,
그 맛없는 반찬을 맛있게 멋있게 먹어주지 못하는
내 속의 탐욕스런 짐승 때문이다.
내 몸의 체액을 다 빨아먹어버리는
질기디질긴 벌레 때문이다.
눈물이 삭아서 피가 되어버리는
한 편의 진짜시,
뼈에 살이 올라붙기도 하고
때로는 뼈가 아려오기도 하는
그런 서정시 한 편 쓰기 어려운 이유─
내가 나에게 자꾸 물러서기 때문,
아직까지는, 끝까지는 달아날 수 없다
자꾸 버팅기기 때문, 그렇게 애써
뻐겨보기 때문,
나의 패배를 아직은 아끼기 때문.

시론집 같은 시집
시집 전반적으로는 시집이라기보단 시론집 같았다. 이런 것이 서정시다 하고 가이드라인을 착실히 제시해주고 있지만 정작 시인 본인이 시집 내에서 그런 시편을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서정의 고통 1」도 읽고 나면 아, 이런 내용을 담고 있으면 서정시가 될 수 있구나 싶지만 그래서 시인 본인은요, 반박하게 된다. 서정시를 잘 쓰는 방법이 알고 싶었으면 이 시집 말고 차라리 시론집을 읽었을 것이다. 시를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읽어본 건데 내용물이 엉뚱하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서정시라는 무엇인가. 본인의 감동과 정서를 주관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서정시로 보통 정의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담아내야 한다. 오히려 서정시라는 것은 본인의 감정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루어진다. 본인이 너무 슬프고 비극적이고 그래서 나는 슬프다, 하는 식으로 쓰는 것은 일기에 불과하다.
첫 페이지에 수록된 자서는 시집을 다 읽고 다시 읽어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그렇게 좋은 시집은 아니라는 걸 간파했어야 했나.
自序
서정의 힘과 이데올로기,
위대한 거부,
한 호흡이 되기까지의 포옹.
설사하는 시대,
밑구멍이 빠져버려 그냥 줄줄 새는 시대,
갈라터진 내 몸이 詩의 밭이다.
내 어눌한 말의 혓바닥으로
너의 밑구멍을 핥아줄 수 있다면,
너와 나 사이 어두운 바다를
가로질러
2000년 가을
서림
다시 강조하지만, '갈라터진 내 몸이 시의 밭'이라는 걸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독자가 그런 감정을 가지게 하는 것이 시인의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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