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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현대문학, 2018

by 감상요정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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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 이 책에 대하여 문학을 잇고 문학을 조명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현대문학의 대표 한국 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두 번째 시집, 이장욱의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개정판을 출간한다.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꾸준히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은 세계의 접힌 부분들을 펼쳐 읽으며 단정한 문장으로 낱낱의 세계를 건져 올리는 일을 계속해온 이장욱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더욱 세련된 특유의 감수성을 선보이며 인간의 내면과 세계의 실재를 서늘한 눈빛으로 꿰뚫어보는 신작 시 20편과 에세이 1편이 담겨 있다. 전통 서정시의 외형을 허물고 재래의 익숙한 서정과 정형화된 시의 문법을 비트는 파격이 색다른 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미묘한 서정의 세계로 이끈다. 이장욱 시집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두 번째 시집은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로서 활동하며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장욱의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이다. 전작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서 작가는 (세계라는) “수수께끼들 앞에서 충실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번 시집 역시 그러한 수수께끼와도 같은 제목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시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돌려주면서 한국 시를 미지의 영역으로 확대’했다고 평가받는 시인 이장욱은 따라서 해설이나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시를 있는 그대로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내가 동물원의 철창 밖을/밤의 저편을/당신을/끈질기게 바라보고 있다고 하자.”(「원숭이의 시」) 그의 시가 자아내는 우울한 감수성과 멜랑콜리와 냉소는 눈물을 흘린다거나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그저 무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하는 느낌이다. “무표정은 이장욱의 모든 시가 짓는 표정이기도 하다”는 시인 김상혁의 말은, 그의 시가 모든 감정을 결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끈질기게” 무감한 포즈를 취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문학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기 때문에 낙관적이며,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느리고 깊고 그래서 잘 안보이고 천천히 가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시인 이장욱의 세계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스무 편의 시가 담긴 이 한 권의 시집으로 충분할 것이다.
저자
이장욱
출판
현대문학
출판일
2022.10.26

 

평점 : ★★★

 

20편 밖에 수록되지 않아 아쉬운 시집이었다.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은 없지만, 절정에 돌입하기도 전에 방영이 중단된 드라마를 본 기분이었다.

이장욱,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현대문학, 2018

이장욱입니다 동물일까요

이장욱 작가는 인간미가 없는 것 같다. 소설과 시, 평론 세 분야 전부 등단을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굵직한 곳에서 수상까지 한 보기 드문 작가다. 이제 평론은 따로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셋 다 활동했을 때조차도 과작을 했던 적은 없었다.

 시집 제목이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인데, 내가 이장욱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혹시 그 동물이 이장욱인가요. 인간이라면 이렇게까지 20년 넘는 기간 동안 한 분야도 아니고 소설이랑 시를 꾸준히 왕성하게 쓰지는 못 할 거에요. 물론, 경이로움을 살짝 담아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물어보고 싶다. 과연 이런 대단한 작가가 한국에서 실패하고 해외생활을 하고 있는 나 같은 소시민에게도 기회를 줄까 싶지만.

 

사고의 전환

해당 시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기법은 반전이다. 위해요소가 없는 상황에서 내용만 뒤트는 정도라,  소격효과를 노렸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천천히 쌓아올린 묘사를 어느 한 순간에 일부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망가뜨린다. 다 완성된 모래성을 감상하기 직전에 다 무너뜨리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이전 시집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일이지만, 이 시집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딱 스무 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 6편 가량이 이런 특징을 보이니 비율적으로 결코 무시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시집이 출간된 2018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치 본인의 신념이 부정당한 걸 독자에게도 느껴보라는 듯이, 진중하게 쌓아올린 묘사들이나 정황을 일부러 무너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울증에 걸린 액션 스타

 

 

액션 스타는 팔과 다리를 움직였네.

달리는 자동차에서 뛰어내렸지.

벽돌을 깨고 뒤돌려차기를 멋지게

 

그는 공중에 떴는데 문득

여긴 어디냐.

넌 누구냐.

자막이 올라가는 곳에서

모르는 나라의 말들이 마구 떠오르는 이상한 곳에서

 

나는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

격렬한 카체이싱의 굉음이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와 같아.

자비는 왜 은밀한 살의이며

왜 친구는 항상 최후의 적인가.

허공의 정지 화면 속에서

 

액션 스타에게 누가 협박을 하고 사라졌다.

액션 스타는 그 사람의 목을 커터칼로

긋지 않았다. 드디어 공중제비를

돌지 않았다.

액션스타는 멍하니

 

깨진 벽돌이 되었다.

깜빡이는 형광등이 되었다.

악당들이 늘어서 있는 지하 주차장에서

비장한 음악이 흐르는 계단참에서

최후의 일격도 없이

 

액션 스타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낙법으로

고요하게

착지하였다.

나뭇잎 하나가 천장에서 툭,

떨어졌다.


 

긴장이 없어서 긴장되는 상황

해당 시편에서 '액션 스타에게 누가 협박을 하고 사라졌'지만 '액션스타는 그 사람의 목을 커터칼로 / 긋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공중제비를' 도나 했지만 결국에는 '돌지 않았다.' 액션 스타가 등장하는 이 시는 세 개의 결로 놓고 보고 싶다. 말 그대로 작품을 보면서 무언가를 기대했지만 떡밥이 회수되지 않은 상황, 영화 속에서나 보던 액션 스타의 실제 공중제비를 보고 싶었지만 픽션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한 것일 수도 있고,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액션 스타라는 대상에 투영해서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사람마다 느끼는 점은 다를 수 있으니 이거일 것이다 단정지어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비슷하게는 학창시절 때 이 시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엄마한테 혼날 것 같은데 혼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긴장해본 경험이 떠오르지만, 이 시와는 결이 다른 일이니 굳이 짚고 넘어가진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장욱,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현대문학, 2018


추천사

 

 

나는 이 책을 추천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먼 곳에서 당신이 혼자 술을 마시고

이 책의 깊은 데서 내가 모르는 이를 그리워하고

이 책을 덮을 때는 욕설을

 

나는 이 책을 추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한 줄의 오후를 보내고

각주에 불과한 긴 잠에 빠지고

문장부호가 없는 가을에 도착한다 해도

 

나는 추천할 수 없습니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이 책을

옮긴이를 모르는 이 책을

아무도 리뷰를 쓰지 않는 이 책을

 

누가 사용한 흔적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읽은 듯한 느낌 때문이 아니라

글자들이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토록 상투적인데도

아침마다 모르는 이들이 펼쳐보기 때문에

독후감이 자꾸 달라지기 때문에

이 책은

 

단 한 군데도 찢어여 있지 않습니다.

장과 절과 페이지로 나뉘지 않습니다.

목차가 없습니다.

출판사는 어디?

누가 대체 이 책을

아무래도 완성되지 않는 이 책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열자마자 이미 모든 것인

이 유일한 책을


존재의 부정

「추천사」라는 시는 모순과 부정으로 가득 차 있다. 제목이 추천사인 것과 다르게 첫 연의 1행에서부터 '나는 이 책을 추천할 수 없습니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심지어 시 전반부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책이라면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할 특성들을 열거하면서 전면적으로 책의 정의를 부정하고 있다.

책이라면 응당 제목을 어떻게든 알 수 있기 마련이고, 옮긴이도 적혀 있을 것이고, 제 아무리 유명하지 않은 책이라고 한들 리뷰가 남아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추천할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목차도 없고 출판사도 모르고 완성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책이다. '아무래도 완성되지 않는 이 책'이라고 끝맺는 것으로 보건데 시의 화자가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인 메타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대상을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점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올랐다. 첫 연에서 '내가 모르는 이를 그리워하'는 것 같은 느낌과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 읽고 '덮을 때는 욕설을' 했던 경험이 있어 자연스레 관련지어봤지만, 역시 전혀 상관 없는 것 같다.

이장욱,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현대문학, 2018


세계의 우울

 

 

세계의 우울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세계는 낡은 점퍼를 입고 편의점 앞에 앉아 있었다.

 

세계는 옷 속에 칼을 품은 채 맥주를 들이켜고 또

세계 씨, 세계 님, 세계야, 세계 이 개새끼야!

억제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묵묵히 일생을 돌아보았지만

오늘은 세계의 우울 곁에 앉아 있었다.

 

세계는 나에게 우주 공간이었다가 국가였다가 보험공단

또는 회사 가족 친구였다가 드디어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러니까 세계에는 세계지도도 있고 세계일보도 있고 세계사라는 출판사도 있지만 아아

세카이계에서는 무슨 일이

 

세계는 세계의 우울을 뚫고 기어이

식칼을 꺼내 들었다.

누구든 들으라는 듯 칼끝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정부는! 회사는! 가족은! 그리고

내 곁에 앉아 있는 바로 너는!

 

세계의 우울과 함께 나는 마침내

적대감과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다.

낡은 점퍼를 입고

식칼을 든 채 마침내

 

편의점 앞에 앉아서


알 수 없는 오타쿠의 눈물과 아키하바라 파스타

「세계의 우울」을 읽다가 '세카이계'라는 단어 때문인지, 서브컬쳐에 관한 내용으로 읽혔다. 세카이계라는 것은 너와 나(주인공), 그 주위의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겪는 사건으로 인해 세계 전체의 멸망이나 구원으로 귀결되는 서사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변형된 세카이계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가 있다. 애초에 학술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닐 뿐더러, 틀에 찍은 듯이 똑같은 스토리라인이 쏟아져나왔던 당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단어이다.

시는 첫 도입부부터 '세계의 우울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이 지닌 '우울'이라는 감정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시적 화자와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 세카이계라는 단어의 정의에 들어맞는다. 6연에서 '세카이계에서는 무슨 일이'라며 의문을 표하지만 7연부터 끝까지 그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세카이계의 세계관에는 들어 있었지만 서사적으로는 멸망하지도 구원받지도 않았으니 엄밀히 따지면 이 시는 세카이계 작품은 아닌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게 쓴 시 같기도 한 「세계의 우울」은 이번 시집에서의 시도나 의도가 잘 읽히도록 설계된 작품인 것 같아서 좋았다. 열심히 쌓아올린 정황들을 한 번에 무너뜨리면서 시가 적극적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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