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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문 베이직, 에센셜, 마스터 별책해설집 평생 한국에 살 줄 알았지 나는 인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12년을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생활반경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도심지에서 사는 것만큼 놀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세상 물정 전혀 모르던 내가 놀기에는 적당한 곳이었다. 노래방, PC방, 카페, 도서관 말고는 딱히 즐기는 취미도 없었다. 친구들이 가끔씩 너 참 재미없게 살았다고 놀리기도 하지만, 노는 데에 욕심은 없었다. 그러다가 예대에 진학했다. 예술을 전공하다보니 잘 노는 친구가 많았다. 세상에는 노래방이나 PC방 말고도 놀거리가 정말 정말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다가 예술계에 발을 뻗고 유명해져서 영어 쓸 일이 전혀 없을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 2023. 6. 3.
서림,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 문학동네, 2000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문학동네시집 48) - 저자 서림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00.11.15 별점 : ☆ 2023년에 살아남기 어려운 책 아무래도 20년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낡다. 표현이 낡은 건 둘째치고, 요즘에 말해서는 매장당할 법한 표현들이 난무하다. 성적대상화가 심하고, 여성혐오적이며, 가부장적이다. 시편 중 일부는 십 수 년 전에 만난 여성을 기억하며 그 기억 속에서 육체를 떠올리는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런 시편들이 어떻게 시집의 제목인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와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본문 후에는 해설이 달려 있는데, 해설의 제목은 또 "충만한 말과 충만한 텅 빔의 미학"이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것은 "충만한 말"이라기보다는 "단어만 많은 것".. 2023. 5. 27.
윤희상,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강화도에 갔다. 내가면 사무소에 들러 고인돌이 있는 곳을 물어보았더나, 가르쳐주었다. 선산에 갈 때처럼 고인돌이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참깨밭 한켠에 놓여 있는 고인돌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과일을 먹었다. 똥을 싸고, 오줌을 쌌다. 다섯 살 된 딸은 고인돌 위에서 춤을 추었다. 우리는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나뭇잎 사이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고인돌과 함께 놀 수 있을까 고인돌은 기본적으로 관광지가 될 수도 있고, 많이들 현장학습을 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점 말고도 고인돌은 오래된 것, 의미 있는 상징물, 옛것의 이미지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을 같은 자리에 있다보니 의미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받은 사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고.. 2023. 3. 5.
윤희상, 「명절날, 객지의 방에서」 명절날, 객지의 방에서 구두를 방으로 가져다 놓는다. 방 안에서 문을 잠근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책을 읽지 않고 본다. 밖에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들리는 것도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소리나지 않게 마른 빵을 먹는다. 빈 맥주병 속에 오줌을 싼다. 병의 주둥이에서 하얀 버큼이 피어오른다. 자세히 바라보고 있으면, 한 송이 꽃이다. 꽃은 아름답다. 고독이란 무엇인가 우선 본문에서의 객지라는 단어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타지생활, 임시숙소 이런 단어는 지금도 많이 쓰지만 객지라는 단어는 비교적 드물게 쓰이는 듯하다. 낡은 단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객지라는 것은 타지에서의 임시 거처 정도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다분히 단어의 느낌이 복고풍이다. 옛날 시들을 읽.. 2023.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