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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 단위)

윤희상,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by 감상요정 2023.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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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밤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강화도에 갔다. 내가면 사무소에 들러 고인돌이 있는

  곳을 물어보았더나, 가르쳐주었다. 선산에

  갈 때처럼 고인돌이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참깨밭 한켠에 놓여 있는 고인돌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과일을 먹었다.

  똥을 싸고, 오줌을 쌌다. 다섯 살 된 딸은

  고인돌 위에서 춤을 추었다. 우리는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나뭇잎 사이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고인돌과 함께 놀 수 있을까

고인돌은 기본적으로 관광지가 될 수도 있고, 많이들 현장학습을 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점 말고도 고인돌은 오래된 것, 의미 있는 상징물, 옛것의 이미지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을 같은 자리에 있다보니 의미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받은 사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고인돌의 의미, 상징과 달리 똥을 싸고 오줌을 싸는 행위, 다섯 살 난 딸이 고인돌 위에서 춤을 추는 행위는 큰 의미를 가진 행위가 아니다. 시의 기준에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시는 고대의 사물을 아이의 놀이공간으로 탈바꿈시킬 뿐만 아니라, 아이의 놀이공간에 성인인 시적 화자가 끼어든다는 점에서 이상한 지점을 발생시킨다.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이상한 점은 제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지 고인돌 옆에서 놀고 있는 다섯 살 된 딸, 그리고 같이 놀아주었을 뿐인 시적화자가 만나 시의 제목은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가 된다. 사물에 대한 명사는 '함께 놀았다'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은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이다. 이는 오랜 시간 인간 세상에 스며들었던 '고인돌'이라는 존재를 수 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놓지 않는 인간의 집념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단지 사물에 불과한 '고인돌'이라는 정적인 존재와 같이 '놀았다'고 선언함으로 인해 인간의 고독함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논다는 행위 자체는 사실 외로운 일이 아니지만, 하필 고인돌과 함께 놀았기 때문에 고독해보이게 해준다. 사실 제목은 고인돌이 아니라 피라미드여도, 팔만대장경과 함께 놀았다 였어도 의미하는 바는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인돌 만큼 이미지로 잘 와닿는 시어는 없었을 것이다. '나뭇잎 사이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라는 끝맺음도 인간의 집착, 역사, 현재를 관통하는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인데 고인돌이 기본적으로는 돌덩이이기 때문에 문명과 살짝 거리가 멀어보이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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