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8.6 (2022.01.01 개봉)
- 감독
- 매튜 워처스
- 출연
- 알리샤 위어, 엠마 톰슨, 라샤나 린치, 스티븐 그레햄,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신두 비
내 평점 : ★★☆

아쉬운 각색
동화 원작과 마틸다 1996년작을 보며 자란 입장에서 이번 영상화는 썩 달갑지 않았다. 티저에서 봤던 Revolting Children에 제대로 낚였다고 할까. 영화 내내 그와 같은 텐션을 이어나갈 거라고 기대했지만 중반부에서 스토리 진행이 축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마틸다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장면들은 싹 사라져버리고 갑자기 바로 하이라이트로 넘어가버리기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동화에서 처음 영상화가 되었을 때에도 묘사가 덜 된 부분은 있었지만 뮤지컬화가 되면서 음악 위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생략된 부분을 또 한 번 생략한 느낌이라 절반 정도의 흥미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영화는 동화를 원작으로 삼는게 아니라 뮤지컬 버전을 따라가는 거고 스토리 전개도 자연스레 뮤지컬 넘버와 뮤지컬 스토리를 따라가는 건 맞지만, 뮤지컬과는 다르게 무대를 전환해야 한다거나 하는 공간적인 제약도 없고 러닝타임도 2시간을 거의 꽉 채우고 있는 거에 비해 아쉽다.
동화와 1996년작에서는 초능력을 가진 꼬마 악동이 그려내는 휴머니즘의 느낌이었다. 그때도 아동학대와 거기에 대립하는 아이들이라는 이미지였는데, 뮤지컬로 옮겨가면서 더 극화되었다. 이전의 마틸다들에서는 초능력과 관련된 비하인드를 설명해주고 어떻게 수련(?)을 하는지, 본인 스스로 별종이라고 생각하는 마틸다와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보듬어주는 허니 선생님의 이야기가 주제의식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였다.
이번에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한 버전에서는 그런 건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초능력은 어느날 갑자기 툭 생겨나는 것이 되었다. 마틸다는 초능력이 생겼다는 거에 전혀 놀라지도 않고 태연하며, 스스로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허니 선생님에게 안절부절 못하는 마틸다는 사라졌다. 모든 아이가 특별하고, 그와 동시에 아무리 별스럽더라도 모든 아이는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는 묵살되었다.

It's unright
시대가 바뀌었고, 보편적인 인류는 폭력, 그 중에서도 아동학대에 더 엄격해졌다. 일반화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제 3세계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최소한 영화의 주 무대인 영국에서는 아동학대에 엄격한 것이 사회적인 분위기이다. (동화원작은 영국, 1996년작에서는 미국이었지만 이번의 뮤지컬 각색버전은 악센트나 극중의 건물들로 봤을 때 영국으로 묘사되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거스르고 오히려 영화 속의 아동학대와 폭력성은 더 강해졌다.
어떤 영화적인 장치나 소격효과 없이, 트렌치불 교장이 아이를 던지면 어떠한 슬로우 모션이나 과장 없이 그냥 수풀 속에 내리 꽂혀버린다. 1996년 작에서는 이 장면에서 마틸다가 초능력을 써 속도를 낮췄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 버전의 영화에서는 그런 영화적인 장치는 없었다.

다른 버전들에 비해 아쉬운 점
뮤지컬 연극 영상을 찾아봤을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뮤지컬 영화 버전에서는 갑자기 마틸다가 독재정권과 싸우는 투쟁군처럼 그려져서 집중해서 보기 힘들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녹여내고자 하는 노력은 알겠는데, 그 노력을 포장이 덜 된 상태로 배달받은 기분이었다. 이 영화는 어떻게 해서든 초능력을 얻고 당황하는 마틸다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존중해주는 허니 선생님, 마틸다의 생부 생모가 야반도주 하는 날에 뒤늦게나마 반성하면서 입양을 허락하는 뒷이야기까지 다뤄야했다.
내 판단으로는 이 영화에서 꽤나 흥미롭게 다루고 있는 곡예사 커플 이야기의 비중을 조금만 줄였어도 충분히 다 넣을 수 있었을 것 같아서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이야기꾼으로서의 마틸다도 흥미로웠고 귀여웠지만, 거의 영화 러닝타임의 2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였나 싶다.
마치며
최근 영화를 비롯해 예술 산업 전체에는 PC주의가 퍼져있다. 한국어로 풀어 쓰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것이다. 작품 내에서는 그 누구도 희화화 되어서는 안 되고, 작품은 다양한 인종을 앞세워 제작되어야 한다. 여성을 도구적으로 소모한다거나 사회적인 약자를 주인공 특히 남자 주인공의 성공을 위한 인물로 그려서는 안 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인종의 다양성이라는 것에는 조금 반기를 들고 싶다. 마틸다에서는 허니 선생님이 1996년작과는 다르게 흑인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는 동화부터 시작해서 흑인이다 백인이다가 딱 정해진 작품이라 부각되는 부분은 아니다.
이전 작품에서 백인이었던 캐릭터를 흑인으로 교체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틸다의 경우에는 허니 선생님이 흑인으로 대체되면서 사회적인 소수자를 의미하는 듯한 마틸다와 허니 선생님, 두 여성의 유대를 보여주는 데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였다. 다만, 이런 사례와는 다르게 역사적인 고증을 무시하고 흑인으로 대체를 한다거나 누가 봐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걸스캔두애니띵을 외치며 작가 역량 부족에 따른 개연성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시도가 보이면 소비자 입장에서 화가 난다. 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즘은 하나의 사상이지 작가의 역량이 부족한 걸 숨기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인이 흑인으로 바뀌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반대로 흑인 캐릭터가 백인 배우로 바뀌는 건 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흑인의 출연 빈도를 높이고 싶으면 새로 제작되는 작품들의 인종들간 비중을 조정하면 되는 것이지 이미 전통적으로 백인 캐릭터로 못박혀 있는 캐릭터는 인종을 바꾸지 않았으면 한다. 실제 백인 배우가 흑인 분장을 하면 블랙워싱이라고 사회적으로 질타하는데 왜 백인 캐릭터를 흑인 배우가 본인의 피부색 그대로 등장하는 것은 블랙워싱이라고 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만약 캐릭터의 인종을 변경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눈여겨 봐줬으면 한다. 비록 영화적으로는 별로였을지라도 정치적 올바름을 정석에 맞게 활용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치킨런: 너겟의 탄생(2023) (0) | 2023.12.26 |
|---|---|
| 쥬만지: 넥스트 레벨 (2019) (0) | 2023.10.06 |
| 뮤지컬 영화를 좋아한다면 - <시카고>, 2002 (0) | 2022.09.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