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4 심보선,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아침달, 2018 별점 : ★★☆ 한 편 단위로는 나쁘지 않으나 시집 한 권이 주는 만큼의 만족을 기대하기엔 분량이 부족하다. 예대 재학 중에 구매했지만 구매는 5년 전에 책이 출판되자 마자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신해욱, 이수명 같은 미니멀리즘의 끝을 달리는 시인들을 좋아했다. 시는 어느 쪽으로든 극에 달하는 순간 이루어진다고 어디선가 또 쓸데없는 걸 배우고는 아 그렇구나, 그런데 또 심보선 시인의 시를 한 편 읽어보니 미니멀하게 쓰는 것 같구나 오해를 했다. 때마침 그 시기에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시집 전문 서점에서 낭독회를 위한 시집을 한정판매 하는 것처럼 판매를 해서 나도 또 지갑을 열었었다. 어디에 발표된 적 없거나 앞으로도 세상에 나오지 않을 시들을 엮어서 발표하는데 그걸 또 시집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정 수.. 2023. 6. 6. 서림,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 문학동네, 2000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문학동네시집 48) - 저자 서림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00.11.15 별점 : ☆ 2023년에 살아남기 어려운 책 아무래도 20년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낡다. 표현이 낡은 건 둘째치고, 요즘에 말해서는 매장당할 법한 표현들이 난무하다. 성적대상화가 심하고, 여성혐오적이며, 가부장적이다. 시편 중 일부는 십 수 년 전에 만난 여성을 기억하며 그 기억 속에서 육체를 떠올리는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런 시편들이 어떻게 시집의 제목인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와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본문 후에는 해설이 달려 있는데, 해설의 제목은 또 "충만한 말과 충만한 텅 빔의 미학"이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것은 "충만한 말"이라기보다는 "단어만 많은 것".. 2023. 5. 27. 윤희상,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강화도에 갔다. 내가면 사무소에 들러 고인돌이 있는 곳을 물어보았더나, 가르쳐주었다. 선산에 갈 때처럼 고인돌이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참깨밭 한켠에 놓여 있는 고인돌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과일을 먹었다. 똥을 싸고, 오줌을 쌌다. 다섯 살 된 딸은 고인돌 위에서 춤을 추었다. 우리는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나뭇잎 사이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고인돌과 함께 놀 수 있을까 고인돌은 기본적으로 관광지가 될 수도 있고, 많이들 현장학습을 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점 말고도 고인돌은 오래된 것, 의미 있는 상징물, 옛것의 이미지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을 같은 자리에 있다보니 의미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받은 사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고.. 2023. 3. 5. 윤희상, 「빵은 나다」 빵은 나다 빵으로 여자를 만들었다 빵으로 남자를 만들었다 빵으로 사랑을 만들고, 빵으로 나를 만들었다 빵에서 해가 뜨고, 빵에서 해가 진다 나는 빵이다 빵은 나다 빵은 무엇인가 해당 시는 윤회상 시인의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시집의 중반부쯤 수록된 시이다. 평이한 이미지나 읽기 쉬운 단어들로 분위기를 이어나가다가 이 시편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돌변한다. 윤회상 시인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등단시인이니 시작법에 대해 딴지를 걸릴 만큼 허술한 사람은 아닐 터이다. 사실 「빵은 나다」는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전공할 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 전부 이루어진 시라고나 할까. 같은 단어의 과한 반복, 한 단어에서 파생되어서 암호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빵이.. 2023. 2. 2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