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동네5

자기 파괴의 완벽한 예술: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서평 김영하의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의 제목이 품고 있는 극단적인 메시지처럼, 이 작품은 생명과 존엄, 그리고 예술의 경계에 대한 가장 차갑고도 아름다운 탐구입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도시의 익명성 속에 숨어 타인의 죽음을 돕는 한 남자를 통해 파괴라는 행위가 가질 수 있는 완벽함의 미학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이야기는 냉정한 관찰자인 나 혹은 엠이라 불리는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그는 일종의 자살 조력자로, 스스로 삶을 끝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배경을 연출하는 일종의 예술가입니다. 그의 고객들은 공통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며, 자신의 삶에.. 2025. 10. 23.
서림,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 문학동네, 2000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문학동네시집 48) - 저자 서림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00.11.15 별점 : ☆ 2023년에 살아남기 어려운 책 아무래도 20년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낡다. 표현이 낡은 건 둘째치고, 요즘에 말해서는 매장당할 법한 표현들이 난무하다. 성적대상화가 심하고, 여성혐오적이며, 가부장적이다. 시편 중 일부는 십 수 년 전에 만난 여성을 기억하며 그 기억 속에서 육체를 떠올리는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런 시편들이 어떻게 시집의 제목인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와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본문 후에는 해설이 달려 있는데, 해설의 제목은 또 "충만한 말과 충만한 텅 빔의 미학"이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것은 "충만한 말"이라기보다는 "단어만 많은 것".. 2023. 5. 27.
윤희상,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강화도에 갔다. 내가면 사무소에 들러 고인돌이 있는 곳을 물어보았더나, 가르쳐주었다. 선산에 갈 때처럼 고인돌이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참깨밭 한켠에 놓여 있는 고인돌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과일을 먹었다. 똥을 싸고, 오줌을 쌌다. 다섯 살 된 딸은 고인돌 위에서 춤을 추었다. 우리는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나뭇잎 사이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고인돌과 함께 놀 수 있을까 고인돌은 기본적으로 관광지가 될 수도 있고, 많이들 현장학습을 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점 말고도 고인돌은 오래된 것, 의미 있는 상징물, 옛것의 이미지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을 같은 자리에 있다보니 의미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받은 사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고.. 2023. 3. 5.
윤희상, 「명절날, 객지의 방에서」 명절날, 객지의 방에서 구두를 방으로 가져다 놓는다. 방 안에서 문을 잠근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책을 읽지 않고 본다. 밖에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들리는 것도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소리나지 않게 마른 빵을 먹는다. 빈 맥주병 속에 오줌을 싼다. 병의 주둥이에서 하얀 버큼이 피어오른다. 자세히 바라보고 있으면, 한 송이 꽃이다. 꽃은 아름답다. 고독이란 무엇인가 우선 본문에서의 객지라는 단어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타지생활, 임시숙소 이런 단어는 지금도 많이 쓰지만 객지라는 단어는 비교적 드물게 쓰이는 듯하다. 낡은 단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객지라는 것은 타지에서의 임시 거처 정도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다분히 단어의 느낌이 복고풍이다. 옛날 시들을 읽.. 2023.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