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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중독

정승제 - 내가 EBS에서 강의하는 이유

by 감상요정 2023.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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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정승제 수학강의를 듣기 시작한 이유

나는 고등학생 때 수포자였다. 내가 고등학생 때에도 수포자라는 말을 썼었는데 아직도 단어가 대체되지 않은 거 보면 수포자라는 단어가 찰지긴 한 것 같다. 수학과 담을 쌓아도 지장이 없는 학과에 진학을 했고 대학교도 진작 졸업했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평생 수학 공부와는 상관 없는 인생을 살게 될 줄 알았는데 뒤늦게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대학교 때에는 글을 쓰는 전공이었다. 입학할 때에는 소설로 들어갔고, 졸업할 때에는 소설과 시를 둘 다 열심히 공부한 상태로 졸업했지만 등단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영국에 와서 정착하게 되었고, 사실 영어도 그 전까지는 필요가 없을 줄 알았는데 외국인과 약혼을 하게 되면서 이제는 평생 영어를 달고 살아야 할 입장이 되어버렸다.

대학교 재학 중에 어쩌다가 회계 과목을 공부하게 되면서 재미를 붙였고, 주식을 투자할 때에도 응용하다가 어차피 전문적으로 일할 거 못 찾으면 평생 아르바이트 급의 일만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앞날이 암담해졌다. 결국 나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유학생 신분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회계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지식이 이과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필요했고, 내가 찾아본 대학에서는 입학 전까지 미적분, 입학 후에는 선형대수학을(경제와 같이 가르치는 학과여서)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앞서 말했다시피 수포자였다.

 

예상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사실 전공으로 삼을 생각은 전에는 하지 못했지만,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찾아보다가 미적분을 알면 경제 과목을 쉽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보였지만 도움은 되겠다 정도였는데, 이걸 전공으로 삼으려는 순간 내가 수포자였다는 것이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수포자였지만, 졸업하고 나서 조금씩 공부는 해뒀는데, 수포자였던 사람이 뒤늦게 독학을 해봤자 얼마나 잘 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내 유학 코스는 내년 1월에 시작하고 그 전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아서 50일수학과 고1수학을 먼저 떼고 대학교 들어가서 미적분과 확률을 공부하면서 선형대수학을 손대면 어느 정도 커리큘럼이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수학 공부를 영국에서 지낸 2년 동안 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등록금이 살인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되도록 모든 강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영어를 미리 준비해두고 싶었다. (비록 아이엘츠 시험보는 날에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7.0은 못 받았지만, 나는 떳떳하다)

5개월 남짓 남은 기간 동안 50일 수학을 수강하면서 내가 독학하면서(인강 없이 독학했었다) 놓친 기초가 있다면 이번에 착실히 빈틈을 메꿔두고, 기초가 탄탄하다는 확신이 들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고 한다. 진학은 회계로 하지만, 재무나 경제 과목을 듣기 위해선 기초가 탄탄해야 될 것 같다.

 

EBS 정승제의 50일 수학

그나마 다행인 것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다양한 수학적 지식과 수학적 사고방식이지 수능을 봐서 킬링 문제들을 풀어내겠다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정승제 커리큘럼 중에서 기초에 해당하는 부분까지만 들으면 될 것 같다. 많은 강사님들 중에 정승제 강사님을 고른 건 이유가 있는데, 한 분은 너무 내 성격과 안 맞았고, 한 분은 너무 커리큘럼이 방대해서 내가 지금 수험생도 아니고 정말 수학적 기초 때문에 굳이 고등수학을 찾아서 공부하는 입장인데 이게 맞나 싶어서 정승제 강사님을 골랐다.

엄밀히 따지면 정승제 강사도 커리큘럼이 방대한 건 맞지만, 최소한 재미는 보장되어 있고 잘 가르친다는 리뷰들을 많이 봐왔어서 고르게 되었다.

 

더 구체적인 이유

회계학과(학사로 갈지 석사로 갈지 아직은 정하지 않았지만)를 졸업한 후에 회계 법인에 입사하려면 영국식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A레벨 점수와 중등 졸업시험 정도에 해당하는 GCSE 점수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에 다시 들어가면 대학 공부 말고도 중학교, 고등학교용 시험을 같이 준비해야 하는데 수학과 영어는 고정으로 봐야 한다. 어차피 시험 문제는 영어라고 해도 풀이과정은 수식으로 적으니까 일단은 익숙한 한국어로 강의를 듣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한국 강의를 수강하려고 한다. 어차피 유학생 신분이 되면 계속 영어로만 강의 들어야 할 거, 외국인이랑 약혼한 입장이라 평생 영어를 쓸 팔자인 거, 기초수학만이라도 딱 여기까지만이라도 한국어로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굳이 영국에 있으면서도 정승제 선생님의 강의를 고르게 되었다.

이방인으로 지내면서 괜히 쓸쓸해지고는 하는데, 정승제 선생님이 워낙 사람이 푸근하기도 해서 최소한 강의 들을 때만큼은 안 외로울 것 같다. 런던에서 지낼 땐 괜찮았는데 지금 지내는 지역에선 한 달 지내는 중에 한국인을 한 번도 못 마주쳐봤다. 어차피 나는 한국인을 만나서 외로움을 푸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체류기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은 썩 유쾌하지는 않다. 기필코 대학교 졸업할 때쯤에는 원어민처럼 말하고 영국식 억양을 완벽하게 구사해서 이방인이 아니라 그냥 여기 살던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

 

뜬금없지만 인종차별에 대하여

수학 강의에 대해 쓰는 중이지만, 갑자기 인종차별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사실 오기 전에는 많이 걱정했지만, 막상 정착하고 나서는 크게 와닿는 인종차별은 겪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인종차별을 겪고 말고를 떠나 여기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냐 이방인의 자리로 남냐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일단은 아직까지는 이방인의 위치에 있다. 원어민들에게 내 영어 수준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는 소리는 자주 듣지만, 외국인 치고 영어를 잘한다 정도의 칭찬이지 원어민만큼 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적당히 알아듣고 적당히 내가 말하고 싶은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한국어로 글을 쓸 때 만큼이나 내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수준을 영어로 구사하는 것이다.

내가 영어를 못하지는 않는다, 라는 말은 자신감도 자만감도 섞여 있지 않은 말이다. 해외 어디에 체류하든지 간에 매일 현지인들과 부대끼고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다 보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건 이 수준을 넘어서서 원어민들과 한치의 단어나 문법적 오류 없이 완벽하게 원어민 대 원어민 수준으로 대화하는 걸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경지식을 더 쌓기 위해 유학생 신분이 되려는 것이고(회계사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지만, 영어도 늘고 싶으니까) 유학생활을 잘 마치기 위해 수학적 지식이 필요하고, 수학적 지식을 더 쉽게 쌓기 위해 정승제 선생님의 강의를 모조리 완강하고 선형대수학을 떼기로 마음먹었다.

 

EBS 정승제의 50일 수학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고등학생 때 흔히 많이 듣는 말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최소한 나중에 뭔가 공부하고 싶을 때 고등학생 때 성적 때문에 네 발목이 잡히지는 않게 만들어라" 라는 말이 있는데, 어이없게도 이게 날 위한 소리였구나를 뒤늦게 깨달아버렸다. 물론, 고등학교 성적이 어떻든 발목이 안 잡히는 삶이 훨씬 많지만, 수학과 영어를 또 다시 손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니 조금은 후회스럽다.

내 주변의 고등학생 친구들한테 종종 말한다. 정말 사람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외국인과 약혼하고 뒤늦게 유학길에 오른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묘하게 고등학생들이 설득당해주는 것 같다. "내"가 "설득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건, 어린 "친구들이" "설득당해"주는 게 확실하다. 가끔 문학과외를 해주다가 이런 말을 하고, 이 말이 과외생 부모님께 흘러들어가면 나한테 고맙다고 해주신다. 그런데 나는 과외생들을 정신차리게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정말 대학교 졸업하고 외국인과 약혼했고, 유학생 신분이 될 입장이라서 할 수 있었던 소리라 이게 맞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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